정부가 프로야구 창단 압박? 대기업들이 숨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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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왜 프로야구를 해야 할까요? 1년에 수백억씩 적자를 감수해가면서 말이죠. 홍보 효과가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물론 우승을 하면 좋겠죠. 그룹 임직원 사기도 올라가고,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하지만 만약 꼴찌라도 하면? 오히려 욕먹고, 마이너스 효과 생기고. 원래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도 아닌데 말이죠."
프로야구의 연간 관중이 400만에도 미치지 못하던 지난 2000년대 중반 무렵, 어느 대기업 계열 프로야구단의 고위 인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 얼마 뒤부터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상승해 관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새 구단 창단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잠잠해졌지만, 최근 그 흐름이 한풀 꺾이면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정말, 한국의 기업들은 왜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걸까? 그리고 애초에 왜 프로야구단을 만든 것일까? 기업은 왜 프로야구를 할까? ![]() "프로야구의 탄생은 제5공화국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과 화제를 제공, 흩어진 민심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근본 취지였다. … 그 어느 기업도 선뜻 나서질 못한 채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프로야구를 창단할 경우 선수단 계약금과 연봉 및 구단 운영비와 경상지출 등을 합치면 연간 7억 원 이상의, 당시로서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데다 프로야구의 흥행도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 이런 시점에서 삼성의 프로야구 참여 결정은 정부 쪽에 힘을 실어주는 촉매제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내 "구단 히스토리") 1982년 원년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하고 있는 명문 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설명이다. 프로야구의 창설을 주도한 것은 5공화국 정부였으며 삼성은 그 취지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주는 차원에서 프로야구단을 창단했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프로야구란 경제적 타산과는 무관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기업은 단지 정부의 의지와 그 사회적 의미에 공감해 사회적 기여 활동의 일환으로 참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삼성만이 아닌,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가진 기본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1년 5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제안되고 그해 가을 이용일과 이호헌에 의해 작성되어 대통령의 결재를 얻은 "한국프로야구창설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계획서를 작성한 이들이 창설 실무 작업을 맡았으며, 그들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며 힘을 실어준 것은 당연히도 대통령과 그의 비서관들이었다. 제안자와 설계자, 실행자와 배후의 실권자가 분명한 실체를 가진 과정이었던 셈이며, 누가 주도하고 누가 협조했는지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가 주도하고 기업이 협조했다는 기업들의 설명에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협조" 차원에서 프로야구에 참여한 일이 기업들에게 과연 "울며 겨자먹기"였는지, 아니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일이었는지는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자라면, 그나마 내키지 않는 일에 나서고도 40년 동안이나 꾸준히 적지 않은 적자를 감수하며 프로야구단을 운영해온 기업들에게 적어도 야구팬들만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기업들 역시 자신들의 능동적인 경영활동의 일부인 프로야구단 운영에 대해 좀 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지역연고제와 대기업 중심 창설 계획 1976년 재미사업가 홍윤희와 실업야구연맹 인사들이 추진하다가 좌초된 "직업야구 창설계획"의 뼈대는 5년 뒤 이용일과 이호헌이 작성한 "프로야구 창설계획"에 그대로 활용되었다. 그 핵심은 지역연고제였고, 각 지역에 연고를 가진 민간기업이 해당 지역 출신 선수들을 모아 팀을 창설하게 함으로써 애향심을 매개로 국민적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 계획에 따라 전국이 서울, 인천-경기-강원, 부산-경남, 대구-경북, 호남, 충청의 6개 권역으로 나뉘었고 각 지역에 연고를 가진 대기업들에게 프로야구팀 창단을 제의했다. 창설준비팀은 각 지역마다 1순위와 2순위 후보 기업들을 정해두고 있었다. 서울은 1순위 MBC(문화방송)와 2순위 두산. 인천-경기-강원은 1순위 한국화장품과 2순위 한진. 부산-경남은 1순위 롯데와 2순위 럭키금성. 대구-경북은 1순위 삼성과 2순위 포항제철. 호남은 1순위 삼양사와 2순위 해태였으며, 충청은 1순위 한국화약과 2순위 동아건설이었다. ![]() 결국 서울과 부산-경남, 대구-경북은 1순위 후보 기업이, 호남은 2순위 기업이 참여를 결정했고 충청과 인천-경기-강원은 후보에 없던 기업들이 창단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구체적인 창단 제안이 이루어진 시점으로부터 2개월 내에 창단이 이루어지고 3개월 내에 개막전이 치러져야 했을 만큼 촉박한 일정이었기에, 그 모든 과정 역시 순탄하게만 흘러갈 수는 없었다. 절반의 지역에서 1순위 대상 기업은 정부의 제안을 거부한 셈이고, 각 지역의 1순위 후보로서 창단한 MBC와 롯데, 삼성 역시 이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모든 진통들은 기업들이 "내키지 않는 겨자를 먹으며 눈물 흘리는" 과정이었을까? 정부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기업들 하지만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1982년 프로야구단 창단을 둘러싸고 기업이 난감함을 드러낸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6개 중 3개의 기업이 정부보다도 오히려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나머지 3개의 기업도 약간의 이견 표출이 있긴 했지만, 창단 자체가 아니라 창단 방식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체 내용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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