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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투수 등장... 고교야구가 한국인들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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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Z 댓글 0건 조회 53회 작성일 22-05-1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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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2일 목동 야구장에서는 오랜만에 각자 모교의 유니폼을 입은 경남고와 군산상고 출신 전설적 야구 스타들의 경기가 열렸다. 경남고 쪽은 감독을 맡은 허구연을 비롯해 최동원 김용희 이종운 윤형배 등이 포진했고, 군산상고 쪽 더그아웃에는 나창기 감독을 필두로 김봉연, 김준환, 김일권, 김성한, 조계현, 정명원, 이광우, 최해식 등이 앉았다. 1976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연출했던 전설적인 명승부를 기념하기 위한 재대결이었다.
 
경기 전 모여든 수많은 카메라들을 향해 두 팀의 '전설'들은 이리저리 엇갈려 어깨동무를 하며 '친선'과 '우정'을 말했지만, 카메라 뒤편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특히 군산상고 더그아웃 쪽에서는 '반드시 이긴다'는 눈짓이 오가곤 했는데, 경남고가 아직 30대였던 두산 베어스의 박보현 매니저를 선발투수로 내보내 시속 130킬로미터에 이르는 강속구를 꽂아대자 이미 환갑에 다가서고 있던 군산상고의 중심타자들 사이에서는 '저 젊은 놈 새끼…'로 시작하는 진지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 날 더그아웃 한 편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송경섭 전 군산상고 교장은 그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말하자면, 군산상고로서는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지. 오늘 경기가 1976년 청룡기 결승을 재현하는 건데, 그 대회는 우리 입장에서는, 말하자면 치욕을 당한 대회거든. 그것도 두 번씩이나. 경남고 쪽에서는 즐기는 마음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군산상고는 입장이 다르지. 글쎄, 오늘이라도 설욕을 했으면 싶은데 … 모르지. 저렇게 나이들을 먹어서."
 
군산상고에 야구부가 만들어진 1968년부터 야구부장을 맡아 1970년대 내내, 오늘날로 치면 단장과 매니저의 역할을 혼자 감당했던 이가 바로 송경섭 선생이었다. 그래서 군산상고가 '역전의 명수'라는 멋진 별명을 얻게 된 1972년 황금사자기 대회 결승전에도, 그리고 그 날 경기의 모티브가 된 1976년 청룡기 대회 결승전에도 그렇게 더그아웃 한 편에서 9회 말 마지막 순간까지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고 속삭였던 이가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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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청룡기
 
1976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는 치솟던 고교야구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4강전부터 패자부활 제도를 도입해 경기 수를 늘렸다. 준결승에서 승리한 두 팀은 승자결승을 벌여 최종결승 진출팀을 결정하고, 준결승에서 패배한 두 팀은 다시 패자부활전을 치러 이긴 팀이 승자결승전 패전팀과 다시 대결해 최종결승행 마지막 티켓의 주인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준결승은 군산상고와 경북고, 경남고와 선린상고의 대결로 진행됐고 군산상고와 경남고가 각각 승리해 승자결승에서 만났다.
 
두 팀 모두 강했지만, 그래도 한 달 전에 치러진 그 해의 첫 전국대회인 대통령배에서 신생팀 신일고에 막혀 1회전에 탈락했던 경남고에 비하면, 그 신일고와 대구상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던 군산상고가 미세하나마 우세하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대통령배 대회 최우수선수 김용남이 어깨 이상을 느끼며 1회전 이후 등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 군산상고의 고민이었고, 1학년 시절부터 압도적인 강속구와 어이없는 난조를 번갈아 보여줬던 최동원의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 경남고가 기대할만한 요소이긴 했다.
 
그리고 군산상고의 우려와 경남고의 기대는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1976년 6월 18일에 열린 승자준결승전에 어김없이 등판한 최동원과 오랜만에 출격한 김용남이 정면대결했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대회 내내 휴식을 취했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김용남의 어깨 상태는 심각했고, 최동원과 부산 소년들의 '한 번 분위기 타면 걷잡을 수 없는' 기질은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았다.
 
3회에 안타와 스퀴즈를 곁들이며 대거 4점을 뽑아내 김용남을 강판시키자 경남고의 타선은 타선대로 살아나며 5점을 더했고, 최동원의 구속은 투구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빨라졌다. 그 날 군산상고의 유일한 1타점을 기록한 3번 타자 김성한은 '어떻게 된 게 경기 후반이 될수록 점점 더 공이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정말 보이지도 않았다'고 회상했을 정도였다. 결국 9대 1의 경남고 승리. 그 대회 대건고와의 8강전에서 10개, 선린상고와의 4강전에서 11개의 삼진을 빼앗았던 최동원이 군산상고와의 승자결승에서 뽑아낸 삼진은 무려 20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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